양(陽)이 음(陰)을 극(剋)한 다는 것은 천간(天干)에서는 음(陰)과 양(陽)이 조
화를 이루는 유정지합(有情之合)의 형태로 나타나고 지지(地支)에서는 긴장
불급(過猶不及)이 실현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상 상호 간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감을 만드는 극(剋)이나 설렘을 만드는 합(合)의 형태로 나타난다.
길흉(吉凶)이 함께 존재한다.
발생하는 것이다.
병(丙)이 을(7을 만나면 화 K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못하며 갑(田)이
음(陰)이 양(陽)을 극(剋)한 다는 것은 역부족 현상으로 나타난다.
(癸)를 만나면 안정적인 수생목(水生木)이 되지 못한다.
음양(陰陽)은 서로 극(剋) 화지 못하고 합(合)하거나 역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길흉(吉)이 함께 존재한다.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설기로(氣) 할 수는 있으나 곡(剋)할 수는 없는
이치이다.
음(陰)이 음을 생(生 한다는 것은 균형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과요
길흉(吉凶)이 함께 존재한다.
불급(過猶不及)이 실현되는 것이다. 물상 상호 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음(陰)이 음(陰)을 극(剋)한 다는 것은 정국(剋)으로 그 효과가 명확하게 나
다만 음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명확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타느냐며 주변 체성(體性)과 관계없이 무조건 흉(凶)으로 나타난다. 이를 칠
정화(丁火)가 을목(乙木)을 만나면 약하게 목생화(木生火)는 되지만 그 효과
살(七殺)이라고 한다.
가 미미하며, 을목(乙木)이 계수(癸水)를 만나면 약하게 수생목(水生木)은 돼
흉(凶)한 작용을 한다.
지만 그 효과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길흉(吉)이 함께 존재한다.
구분
작용
양(陽)이 양(陽)을 극한 다는 것은 정국
)을 하는 것으로 효과는 비교
극(生剋) 생(生) 생(生) 생(生) 생(生) 극(剋)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본상(五行 性)에 따라 길흉(
갑목(甲木)이 경금(庚金)을 만났을 때 동양 지목(棟梁之木)이 필요하면 길(吉)
)은 반반이
양(陽) → 양(陽) 양(陽) → 음(陰) 음(陰) → 양(陽) 음(陰) → 음(陰) 양(陽) → 양(陽) 양(陽) → 음(陰) 음(陰) → 양(陽) 음(陰) → 음(陰)
주로 좋은 작용으로 나타난다. 주로 지나친 작용으로 나타난다. 주로 역부족 현상으로 나타난다.
주로 약한 작용으로 나타난다. 주로 길흉(吉凶)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주로 합(合)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주로 역부족 현상으로 나타난다. 주로 칠살(七殺) 작용으로 나타난다.
이 되고 꽃과 열매 등 생산성이 필요하면 흉(人)으로 나타난다.
길흉(吉人)이 함께 존재한다.
사주에서 생각(剋)을 8가지로 구분하여 살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실
오행(五行)의 생각 初)은 8가지만 알면 된다. 만일 이것을 오행(五行) 두를 각각 대비해서 외운다면 시간 낭비일 것이다.
()의 발생이다.
생극(生剋)에는 필연적으로 설()이 발생하며 설(復)은 일종의 에너지 소모
현상이다. 생극(生剋)의 목적은 균형(均館)'이다.
사주는 논리가 있는 과학이다.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면 훨씬 쉽고 간결해진다. 음양오행 생각 제 화석 五行 生列制化)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아 (陽)을 이해하고 체화(體化)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주명리 고전서(四柱命理古傳書)에는 음양(陰陽)에 대한
7) 사주명리의 목적과 인간상
개념과 해설이 매우 부족하여, 음양(陽)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
유학(儒學)에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상(五常)이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 실천하고 지녀야 할 마땅한 도리이며 이를 통해 완성하고자 하는
서삼영(四書三經과 같은 고전과 인문서를 공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필수 영양소를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듯이 음
인간상을 군자(君子)라 한다.
양(陰陽)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佛敎)에서 완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인 부처와 같은 맥락이다.
음양(陰陽)은 사주명리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철학과 학문, 심지어
그렇다면 사주명리(命理)에도 완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이 있을까?
종교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본 원리이다.
그것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陰陽)의 이치를 모르고 사주 공부를 시작한다면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행복이 만들어지는 근원은 올바른 선택이다.
사주를 이해하기 위해 100권짜리 사주 대백과사전을 모두 읽고 알아야 할
사르트르의 명언처럼 인생은 끝없는 '선택'이다.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이른 아침 출근할 때 입을
그것은 오히려 사두명리(命理)를 지치고 병(病) 들게 하는 행위이다.
옷을 선택하는 것부터 한 남자 혹은 한 여자를 신랑 신부로 맞이하는 중요
근본과 원리를 추구하는 사주명리(命理), 사족(蛇足)이 없는 깔끔한 사
주명리, 이것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만드는 것이 사주 초학자들이 가져
한 선택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선택을 가장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물론, 혜안과 지혜를 얻은 군자나 부처가 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
야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언컨대 사주명리에는 특별한 비기(秘記)나 비법(秘法)은 없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 것이 비법(法) 임을 기억하라.
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목(木)이 떠오르면 목(木)의 목적, 역할, 특성, 질감, 현상 등이 느껴져야 하 는 것이다.
나 자신의 장·단점, 성향, 특징 등을 정확히 알고 그것에 그
사주에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일부분만 아는 것이 된다.
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느낌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란 격언처럼, 자신을 알고 난 흔 아차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쉬울 수 있다.
사랑에서도 보이는 것만 집착하면 깊이 있는 배려와 이해에는 영원히 다가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있으므로 세상도 존재하는 것이
갈 수 없게 된다.
비즈니스나 연애에서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상대의 마.
왜냐하면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고, 그릇에 담
아니라 내 마음을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겨진 물처럼 가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는 통한 행복한 삶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사주의 목적도 올바른 선택을 통한 행보할
빙산의 수면 아랫부분이나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렇지만 대부비의 사람들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객관적 정보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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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것뿐이다.
의해서가 아닌 감성이나 주관적 심리 상태에 의해 오판(誤判: 잘못된 판다).
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사주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이루어져 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그것은 우리 마음의 구조 때문이다.
는 분리해서 보되, 머리와 몸통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마음이란 물이 담긴 그릇과 같아서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의 형태가 달라
된다. 천간(天干)은 하늘(두뇌=정신)이고 지지(地支)는 땅(육체 행동)이기
진다.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릇 모양만 보면 담긴 본질에 대한 왜곡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천간(天干)에는 화(火), 지지(地支)에는 수(水)가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하늘에는 마땅히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물이 할
그릇은 껍데기이고 물은 본질인데 우리는 늘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한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 속에서 사는 마음의 균형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
은 인문서와 명상이다.
마음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선택하는 것을 오류가 없거나 아주 적다.
사주 명리는 기(氣)의 학문이다. 기(氣)란 보이지는 않지만 명확하고 강렬하게 조재하는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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