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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 -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다.

환경과학 -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다.

 

환경과학 -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다.

 

자연복원생태학으르 종합생태학으로 부르는 이유

자연환경복원은 1935년 가을에 위스콘신대학 수목원에서 24ha의 초원을 복원한 이래 최근 15년간 급속히 발전한 분야로 보고 있다.물론 아직까지도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자연환경복원에 대한 연구는 최근 들어서 매우 활발한 분야로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비교적 최근의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서 국제생태복원학회(Society for Ecological Restoration internationl)에서 발간하는 Restoration Ecology 를 보면 1997년부터 1999까지 실린 100여편의 논문 중에서 25는 개별적인 생물종의 복원, 30%는 생태계, 유역 또는 경관의 복원, 18%는 습지의 복원 및 조성, 15%는 광간,비탈면,훼손지 복원, 그리고 나머지 12%는 산림,초지,수생생태계 복원에 대한 논문으로 나타났다.(John G.). 생태복원에 관한 고찰 중에 하나로 생태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여기서 생태적 시스템이란 창조적인 축과 보전적인 축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데, 창조적인 축은 싱태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발명해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인간과 자연의 보다 원할한 관계를 위한 새로운 환경적 패러다임의 기초로서 자연환경복원을 진심으로 희망한다. 우리가 필요하는 어떤 것과의 관계를 만들려면 우리는 자연경관을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자연적 혹은 역사적 생태계를 말한다.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서도 상호 이익을 주 수 있어야 하듯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상호이익이 있어야 한다.항상 과거의 상태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지나온 발자취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지식 향상과 문화혁명으로 자연과의 관계도 계속 변하므로, 이 패러다임 역시 유동성 있고 창조적인 확장과 개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환경복원이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만족시킬 패러다임을 제공할것인가가 문제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서 첫 번째는 목적이다. 복원은 어렵고, 북확실하며 아직은 초기 단계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이루어졌던 초원의 복원은 최고의 예로 소개되고 있지만 결점이 많다.즉 원상태를 제대로 복원해내지 못했따는 것이다. 어떤 환경론자들은 복원은 불가능하며 보존하는 것은 현상태를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린 것이라 하지만, 복원이 불가능하면 부존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의 영향으로 인한 자연계의 변화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원은 적어도 변화를 멈추거나 인간 영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제어하고 받아들이고 미비점을 보완해줌으로써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이렇게 본다면 보존은 불가능한고 복원은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게 된다. 자연계는 계속 변화하며 모든 차계는 새로운 상태로 변화하게 되어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서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순리이듯, 복원에 대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자연계에서 하나의 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최고의 자연지역을 말할 때는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부호받은 지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향을 인지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복원된 지역이라는 것이다.일부 비평가들은 복원이 생태계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하지만, 인간이 어떤 자연계든 똑같이는 만들어 낼 수 없듯이, 단순한 외형적 복제를 떠나, 원ㅅ항태와 최대한 똑같이 작용하도로 장점들을 재결합하는 일이 요구되어 진다. 두번째는 생태적 차원이다. 환경주의 진정한 도전은 환경을 인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있다. 즉 자연과 인간 모두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주의는 오히려 최소한의 영향이라는 윤리로 인간은 자연과 극도로 제한된 관계만을 유지하도록 했다. 1.사진만 찍기 라던가 2. 발자국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등 인간을 자연과 하나의 세상에 공존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관찰자나 방문객 정도로만 국한시켜온 것이다.